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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심리학 연구 '내성법' - 심리학의 아버지 빌헬름 분트

by 7hinking 2024. 4. 4.

내성법(introspection)이란 자기 자신의 생각과 느낌, 행동 거기에 동기까지 검토하고 이런 통찰을 사용해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좀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내성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인데요. 실험심리학을 창시한 빌헬름 분트는 크리스티안 볼프와 이마누엘 칸트가 주장한 주관적 자기 관찰에서 마음 연구를 분리하고, 심리학을 관찰 가능한 과학으로 확립하려 시도하면서 내성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빌헬름 분트 (Wilhelm Wundt)

빌헬름 분트는 오랫동안 의학을 연구하고 공부했지만, 최초로 자신을 심리학자라고 칭한 사람이자 1879년에 최초의 심리학 실험실을 세운 사람입니다. 분트는 1874년에 학계에 큰 획을 남긴 <생리심리학 원론 (Principle of Physiological Psychology)>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870쪽짜리 책 한 권이었지만 마지막 판본이자 6판이 나온 1908년에는 3권으로 그 내용이 늘어났습니다.

 

<생리심리학 원론>은 생리학을 많이 다뤘지만 분트가 완전히 생리학적 관점으로만 심리학에 접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이란 경험을 모으는 동시에 그런 경험에 대해 추측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생리학과 심리학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다룬 최초의 연구였는데요. 분트는 이 책 서문 첫 줄에 "내가 이 책에서 공개하는 연구는 새로운 과학 영역을 표시하려는 시도다."라고 썻고, 이 책은 그 말에 꼭 들어맞는 저서였다는 평가입니다.


실험심리학

분트는 그 당시까지 마음 연구 분야를 지배했던 이원론 개념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통합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는 동료 철학자들, 특히 볼프와 칸트의 업적을 존중했지만, 마음과 인간 내면의 경험은 접근할 수 없고 완전히 주관적이며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조사할 수 없다는 그들의 주장에는 반기를 들었습니다.

 

분트 이전에는 주로 주관적 자기 관찰법을 사용해서 마음을 연구했는데요. 이는 철학자들이 직접 인간 행동을 관찰하여 사고에 관해 생각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분트는 주관적 자기 관찰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른 도움 없이 직접 정신적 사실을 정확하게 특성화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면서, 이 추론 방법에는 결함이 있으며 심지어 오만하다는 뜻을 나타냈습니다. 관찰자가 자기 자신을 관찰하면서 어떻게 그 관찰이 정확한지 알 수 있겠는가? 분트는 인간이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법인 감각을 객관적으로 연구함으로써 감각과 연결된 마음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애썻습니다.

 

또한 분트는 동료들이 좀 더 과학적인 접근법인 실험심리학에 반대하면서 펼치는 주장들이 실험심리학이 내성법 개념을 거부한다는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실험심리학은 자기 관찰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신중하게 통제하며 반복 가능한 관찰법을 이용해 마음과 내성 과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려 했습니다. 분트는 그의 책 <생리심리학 원론>에서 내성법을 연구할 때 실험 절차의 목적은 부정확한 내부 지각이 유일한 자원인 주관적 방법을 정확하게 조정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에서 의식을 관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분트는 실험심리학이 다른 과학 분야들, 특히 물리학 및 생리학과 많은 특징을 공유한다고 믿었으며, 시간 같은 요인을 측정하는데 동일한 기구를 많이 사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분트의 접근법은 마음 연구를 철학과 분리하여 실험심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바탕으로 실행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최초의 심리학 실험실

앞에서 언급한대로 1879년 분트는 최초의 심리학 실험실을 세웠는데요.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교에 세워진 이 실험실은 '실험심리학 연구소'라고 이름지어졌습니다. 이 실험실에서 분트는 심리학을 다른 자연 과학과 똑같이 연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훈련과 실습을 거친 관찰자들을 기용했고 학생들에게 매번 똑같은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신중하게 절차를 통제해 적용할 것을 권장했다고 합니다. 이는 관찰을 반복하고 비교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로 인해 심리학은 주관적 철학에서 한걸음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분트는 외부 자극을 이용해 의식을 수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를 가리켜 '외부로부터의 수정'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에 따르면 정신 과정을 임의로 정한 조건하에 둘 수 있고, 이 조건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으며, 원하는 대로 일정하게 유지하거나 변경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단순한 소리나 섬광 같은 조건이 이에 속합니다. 다음에는 내성법 과정으로 그 자극에 대한 반응을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습니다. 분트는 심리학에 체계적 기법을 적용해서 다른 자연과학과 똑같이 엄격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려 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실험심리학 연구소에서는 연구원들이 실험 참가자들에게 똑딱거리는 메트르놈 소리를 들려주거나 섬광을 비춘 다음 어떠한 감각이 느껴지는지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연구원들은 결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별도의 방에서 관찰했습니다. 초기에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단순 감각과 지각의 관계를 연구했지만 나중에는 주의, 기억, 느낌처럼 좀 더 복잡한 개념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실험심리학 연구소에서 첫 번째로 완료한 조사는 '막스 프리드리히(Max Friedrich)' 실시한 <단순 및 복합 감각과 관련된 통각 작용의 지속에 관하여(On the duration of appreception in connection with simple and compound sensations)>라는 제목의 연구였습니다. 이는 특정한 심리 과정이 발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한 여러 조사 중 하나였는데, 반응 시간이나 기억 회상이 이런 심리 과정에 속하며 반응 속도를 1000분의 1초까지 측정할 수 있는 크로노스코프(chronoscope)라는 장비를 사용해 실험하며 정확하게 측정하였습니다.

 

분트는 이처럼 정확성에 집착하면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심리학 연구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한계도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을 포괄적으로 연구하려면 다른 기법들이 필요하다고 인정했습니다. 또한 심리학이 진화하는 학문임을 인식하고 이를 첫 번째 저서에서 "이 책이 그렇듯이 첫 번째 시도에는 수 많은 결함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결함이 많을수록 더 효율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로 유려하고 겸손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습니다. 비록 한계에 있었지만 분트의 연구는 지속적으로 심리학에 공헌했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를 심리학을 독자적인 학문으로 확립한 심리학의 아버지로 여기고 있습니다.


내성법은 심리학 연구에 사용된 가장 초기의 방법 중 하나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예로 '마크 그리피스(Mark Griffiths)'가 1994년에 실시한 연구인 <슬롯머신 도박에서 인지편향과 기술의 역할(The Role of Cognitive Bias and Skill in Fruit Machine Gambling>을 들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피스는 비합리적 사고 과정이 도박 행동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는 정기적으로 도박을 하는 사람과 어쩌다 한 번씩만 하는 사람을 비교하며 연구했습니다. 각 참가자에게 3파운드를 주고 슬롯머신 도박을 하게 한 다음, 참가자 절반에게는 도박을 하는 동안 드는 생각을 소리내어 말하도록 했습니다.

 

분트와 마찬가지로 그리피스의 절차도 반복할 수 있었습니다. 각 참가자에게 같은 도박 과정을 시켰고 지시사항도 표준화하여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각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들었다고 하는데요.

 

"생각을 소리 내서 말하는 방법은 게임을 하는 동안 머릿속을 스치는 모드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음 사항을 꼭 기억하세요.

1)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말하세요. 상관없다고 느껴지는 생각이라도 검열하지 말고 말하세요.

2) 생각이 명확하게 구축된 상태가 아니더라도 가능한 한 계속해서 이야기하세요.

3) 또박또박 말하세요.

4) 필요하다면 끊긴 문장이라도 주저하지 말고 사용하세요. 완전한 문장으로 말해야 한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5) 자기 생각을 정당화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리피스는 이 내성법으로 정기적으로 도박하는 사람들은 비이성적인 언어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정기적으로 도박하는 사람들 중에는 "기계가 나를 좋아해" 같은 발언을 하는 비율이 14%에 달했지만, 비정기적으로 도박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런 발언을 하는 비율이 2.5%에 그쳤고, 대신 "나는 거기에서 1파운드를 전부 잃었어."처럼 좀 더 이성적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